안녕하세요
[9/12(목) 목요광장 정치평론]
- 일시 : 24.9.12(목)
- 장소 : 공간마중 4층
- 주제 : New Right 는 어떻게 대안이 되었나_정체성과 세력화에 관하여
- 강사 : 유범상 교수님
<New Right 는 어떻게 대안이 되었나_정체성과 세력화에 관하여>라는 주제로
공간마중 4층에서 진행되었어요.
비가 오고, 추석연휴 전임에도 40여명이 오셔서 공간이 꽉 찼답니다.
현실의 정치를 보며 애타는 마음으로
발제를 해주신 한순애, 이수홍 선생님께도 감사드립니다.
첨부 : [발제문] 240912 한순애_모욕과 울분, 이후 우리는 - 목요광장.pdf
[발제문] 240912 이수홍_뉴라이트 어떻게 대안이 되었나.pdf
김민하 선생님의 현장 스케치 후기를 담아 옵니다.
1.
광복절을 두 쪽 내더니, ‘일제 치하 조선인들의 국적은 일본’, ‘성소수자는 빨갱이’ 등 상식에 반하는 발언을 하는 인사들이
노동부 인권위 방통위 독립기념관 등 주요 요직을 차지하는 상황에 느끼는 당혹감, 모욕감, 위기감을 공유했습니다.
그들의 발언에 황망하면서도 ‘그런 의견이 수용되면 왜 안 되지?’ 하는 의문도 든다는 의견도 나왔습니다.
지금은 비상식이지만 반복되다 보면 어느새 상식으로 파고드는 것이 아닐까 걱정했습니다.
정작 필요한 정보는 선별하기 힘든 정보홍수 속에 젊은이들이 갈수록 보수화 되는 상황에 대한 걱정이 특히 많았습니다.
20대 청년의 다음과 같은 말에 안도하기도 했습니다. “제 친구들 생각보다 똑똑합니다.
저희 투표율이 다른 연령층보다 10%나 높다고 들었어요. 우리가 지금 대통령 뽑은 거 아니거든요?
뉴라이트의 주장에 논리적으로 반박할 수 있는 친구들이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
유범상 교수는 정리강의를 통해 뉴라이트를 ‘정치의 삼각형’, 즉 그들의 철학, 세력, 정책 차원에서 분석했습니다.
관련된 영상을 찾아보고 나름 잘 정리된 글들을 봐도 도통 이해가 안 가던 뉴라이트의 면모가 확 눈에 들어오는 느낌!
‘세상읽기’가 가장 중요한 실천의 첫 발임을 또다시 깨닫는 순간이었습니다
(강의 내용을 좀 더 자세히 다루면 좋겠지만, 현장 강의의 힘을 몇 줄 요약으로 전하긴 역부족이라는 생각에, 시도하지 않겠습니다).
2.1
과거 상대를 ‘너 빨갱이지?’ 하고 겁박하고 잡아넣으면 충분했던 한국의 보수(old right)가 정권을 잃는 경험을 하면서
진화한 결과물이 뉴라이트임을 봅니다. 강의를 들으면서, 나름 얼개를 갖추었지만, 기괴하게까지 보이는
뉴라이트의 논리 체계에서 빠진 것이 무엇일까 혼자 생각해 보았습니다.
모든 철학이 가닿고자 하는 본질, 이라고 제 스스로 이해하고 있는, 인간에 대한 이해, 인류에 대한 사랑이
그 체계에서는 결여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앙상하기 그지없는 그 철학적 자원을 ‘전향’한 구 운동권들이 제공하였음에 씁쓸함마저 느낍니다.
2.2
서구의 보수층을 형성하는 부르주아지들(old right)이 권력에 대항하며 자유권을 얻은,
나름 진보적인 토대를 가지고 있는 반면, 우리의 보수는 일제시대에는 친일을 하고 권위주의 정권 아래서도
권력에 붙어 성장한 치명적인 약점을 지니고 있음을 상기했습니다.
뉴라이트는 더욱 퇴행적이어서 뉴(new)가 아니라 올디스트(oldest) 라이트가 아닌가는 유 교수의 반문에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문제는 나름의 ‘철학’적 체계를 갖춰온 뉴라이트들이 ‘세력’화되어, 아무 생각이 없어 우스꽝스러울 지경인 현 대통령을 타고 넘어
역사 교육 언론 노동 등의 분야를 점령하고 갖가지 ‘정책’을 쏟아내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영국의 뉴라이트인 대처 10년 집권의 영향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듯,
한국의 뉴라이트가 우리 사회에 드리울 그림자가 얼마나 짙을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3.
인천, 서울, 경기권뿐 아니라 멀리 춘천에서도 오셨습니다. 할아버지와 초등학교 5학년 손녀, 엄마와 20대 청년 딸도 있었습니다.
명절 직전인데다 비까지 내려 고생이 되는 길이었지만, 작금의 상황에 “답답하고 외로웠다”는 분들이
공간마중 4층을 꽉 채운 서로의 존재로 희망을 찾는 그런 자리였습니다.
미약한 것 같지만, 이 이상의 강력한 답은 없는 듯합니다.
함께 세상읽기를 하고 토론하고 공존을 고민하며 요구하는 시민들의 힘을 키우는 것, 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