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중물 세미나

자기목소리로 공동체에 참여하여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이 만든 시민단체입니다.

Water for change

발제문 제출

  
조회 수 72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게시글 수정 내역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게시글 수정 내역 댓글로 가기 인쇄

<마중물세미나 28학기 1강 발제문>

 

판도라의 상자를 열다

25.3.16 / 석화영

 

포이에르바흐의 관한 테제를 읽고 어릴 적 읽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주인공이 보물을 찾아 길을 떠난 이야기. 이야기 속 결말은 항상 두 가지였다. 대부분의 결말은 주인공이 우여곡절 끝에 금은보화가 가득 들어있는 상자를 찾아 가족들과 행복하게 살았다. 그리고 아주 가끔은 주인공이 우여곡절 끝에 보물 상자를 찾았으나 그 상자 안에는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았다.

전자의 결말이 나올 때에는 나도 언젠가 금은보화를 찾아서 행복하게 살아야지라고 생각하며 멋진 미래를 상상해 보았다. 그런데 후자의 결말이 나올 때는 허무하면서도 짜증이 났다. ‘그래서 주인공이 뭐 어떻게 됐다는 거야?’ 길을 걷다가도 그 생각이 떠오를 때면 마치 내가 모르는 엄청난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 같아 석연치 않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두 이야기 중에 후자의 이야기가 좋다. 지금의 내가 후자의 이야기를 해석해 보자면 보물을 찾기 위한 실천-상상-변화의 끊임없는 과정이 바로 삶의 보물이다. 이미 이야기 안에 보물이 담겨있는 것이다.

이것을 이해하고서 난 왜 엄청난 인생의 보물을 이제서야 알게 된 것인지, 왜 여태 아무도 나에게 이것을 가르쳐 주지 않았는지 화가 나기도 했다. 그런데 과거의 나를 돌아보면 희망을 얘기하는 누군가에게 철모르는 사람이라며 내심 무시하기도 했었다. 나의 그런 생각을 주변 사람들과 나눌 때에도 내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 주변 사람들도 모르고 있었던 것 같다. 어쩌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잘 모르고 있는건 아닐까? 그리고 누군가는 의도적으로 숨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설사 과거의 내가 사적 유물론을 알았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였을까? 스스로에게 질문해 본다. 그리고 책만 읽었던 시절의 나를 떠올려 본다. 내가 읽은 책에서는 빨치산 투쟁을 하는 사람들, 독립운동이나 민주화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나왔다. 그들을 보면 당시 내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돈을 받는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가족들을 챙길 수도 없었다. 심지어 가족들로부터 외면 당하기도 했다. ‘도대체 왜 하는거야?’ 답답함에 여러 기념관을 가보기도 하고, TV에 나온 생존자의 인터뷰를 보기도 했다.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내가 모르는 엄청난 비밀이 숨겨져 있을 것 같은 느낌은 어렸을 적 보물이 없는 상자에 대한 나의 궁금증과 같았다.

 

시간이 흘러 어쩌다 보니 대학원 와서 민주화 운동을 했던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나는 당연히 민주화 운동을 왜 하셨어요?’라는 질문을 꺼내봤다. ‘그때는 다 그런 분위기였어’, ‘나는 집회하는 누나가 멋있어서 했어’, ‘친구 어머니가 자기 아들이랑 같은 대학을 갔다며 앞으로 잘 부탁한댔는데, 하필이면 그 친구가 운동을 해서 나도 같이 하게 되었어’, ‘복합적이라서 뭐 하나로 얘기할 수 없어지금까지 내가 들었던 얘기들이다. 여지없이 보물이 없는 상자 이야기였다.

 

답은 없었다. 다 집어치우고 공부나 하자 싶었다. 그러다 마르크스를 만났다. 학습을 하며 동료들과의 우정도 깊어졌다. 어쩌다 보니 인천을 오게 되었고 협회에서 활동도 하게 되었다. 활동을 하며 직장과 협회에서의 나의 모습을 비교해 본다. 직장에서는 다른 동료와 같은 월급을 받는데 내가 더 많은 역할을 맡게 되면 상당히 민감하게 반응한다. 반면 협회에서는 돈을 받지 않는데 내 역할이 많아지는 것에 거부감이 없다. 협회 활동을 통해 돈에 얽매이지 않는 인간의 자유로운 활동, 그 안에서 인간 본연의 모습들을 나눈다. 대조적인 나의 모습을 보며 나는 상상한다. 사람들이 사회에 참여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고 생존을 해결할 수 있는 빵이 보장되면 내가 다니는 직장도 지금보다는 더 행복해질 수 있지 않을까? 희미하지만 머나먼 미래의 모습을 활동을 통해 느끼게 된다.

 

요즘 내가 느끼는 것이 학습-습학의 과정들이 맞다면 난 꽤나 운이 좋은 사람이다. 왜냐면 내 곁에는 어려운 철학자들을 쉽게 설명해 주시는 교수님들이 계시고 함께 공부하는 동료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선배시민협회, 마중물 등 내가 활동할 수 있는 터전도 있다.

 

드디어 내 인생의 보물상자를 찾았다!

다른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금은보화가 지금 내 눈 가득 들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