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중물 세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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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제문 제출

  

<마중물세미나 28학기 5강 발제문>

 

불평등 사회에서 토론하는 동료들에게 길을 묻다.

 

25.5.11 / 채송아

 

 

1. 제네바 공화국의 시민이길 바랐던 장 자크 루소

장 자크 루소는 1712년 스위스 제네바 공화국에서 태어났다. 당시 제네바는 주권이 국민에게 있는 국가라는 의미의 '공화국'이었지만, 실질적으로는 200인 평의회, 25인의 집행부를 구성하는 부유한 가문들이 지배했다. 루소의 집안은 그 평의회에 한 번도 선출된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는 언제나 자신을 '민중의 한 사람'으로 생각하길 좋아했고, 지배층의 탐욕과 위선을 증오하였다.

루소는 생후 열흘 만에 모친을 여의었다. 루소는 어머니의 죽음을 자신의 출생 탓으로 여겼는데, 고백이라는 책에서 '나의 출생은 나의 최초의 불행'이라고 말하였다. 열 살이 되어서는 아버지가 동네 퇴역 장교와 다툼이 생겨 다른 도시로 도망갔고, 그곳에서 재혼한 뒤 그에게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루소는 학교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으며, 도제, 하인, 음악가, 식물학자, 작가, 철학자 등 여러 직업을 전전했다.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한 채 계속 떠돌아 다니는 삶을 살다가 서른여덟 살이 되어서야 유럽에서 반문명 철학자로 이름을 알렸다. 하지만 그가 집필한 저서 중 에밀, 사회계약론은 제네바에서 큰 논란이 되었으며, 그의 책은 금서로 지정되었다. 또한 그는 시민권을 박탈당할 위기에 처함과 동시에 고발당하면서 정치적 탄압의 대상이 되었다. 그는 프랑스에서도 기소당했다. 그는 정치적 견해를 담은 책에 항상 자신이 '제네바 공화국 시민'임을 표식하였으며, 제네바에 돌아가길 희망했다. 그의 이러한 바람은 인간 불평등 기원론의 서문을 제네바 공화국에 바치는 글로 구성한 것에서도 엿볼 수 있다. 루소는 자신이 출생한 제네바를 자유롭고 공화적인 도시국가로 이상화하며, 늘 그곳에 돌아가길 원했지만 자발적으로 돌아갈 경우 체포되거나 처벌당할 위험이 있어 결국 스위스, 프로이센 등을 전전하며 3신분이자 사실상 망명자로 살아야 했다. 그는 끝내 고국에 돌아가지 못했으며, 프랑스의 귀족이자 후원자인 르네 드 지라르댕의 초청으로 프랑스에 돌아가 66세의 나이로 그곳에서 사망했다.

 

2. 인간은 왜 불평등해졌는가?

옛날 어느 때인가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게 살아가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불평등이 싹텄고, 그것이 자라고 심화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사람들이 모두 행복하게 살던 그때의 삶은 어떠했는가? 그 평화롭고 행복한 상태는 왜, 어떻게 깨졌으며, 어떤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는가? 루소는 인간 불평등 기원론을 통해 이에 대한 이야기를 언급한다.

필요한 양식을 자연에서 쉽게 얻을 수 있었던 인간은 각자 원하는 곳에 가서 자유롭게 먹고, 즐기고, 생각하며 행복하게 살았다. 누구를 구속하지 않고, 누구로부터 구속받지도 않았다. 그런데 사람의 수가 늘고, 언어를 배우고, 도구를 사용하고, 가족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공동체 속에서 인간은 그 존재가 상대화되어 남을 의식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편리함을 누려도 행복하지 않은 반면, 그것을 잃으면 몹시 불행해지게 되었다. 또한 남들에게 인정받는 것이 하나의 가치를 지니게 되면서 노래를 잘 부르고 춤을 잘 추는 사람, 얼굴이 잘 생기거나 힘이 센 사람, 재주가 뛰어나거나 언변이 좋은 사람이 존경을 받았다. 이때부터 좋고 나쁨이 생겨나고 선악이 나타나며 불평등의 씨앗이 뿌려졌다. 루소는 사유 재산 제도야말로 인간 불평등의 뿌리이며 불행의 근원이라고 말한다. 소외된 사람들은 잃은 것을 되찾기 위해 또는 남보다 더 많은 것을 다시 얻기 위해서 싸울 수밖에 없었고,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이런 상황 때문에 일어났다. 약삭빠른 사람들은 묘안을 찾아내서 자신들에게 유리하면서도 남들은 잘 알아차리지 못할 조건으로 계약을 맺었다. 심지어 법률가들은 노예의 자식들은 태어나면서부터 노예가 된다고 엄숙히 선고했는데, 루소는 이것은 달리 말하면 인간이 인간으로 태어나지 않는다고 결론 내린 것과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이처럼 유리한 조건을 차지한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 사이에 불평등이 제도적으로 자리 잡았다.

 

"어린애가 노인에게 명령하고 바보가 현명한 사람을 이끌며, 대다수의 사람들이 굶주리고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최소한의 것마저 갖추지 못하는 판국인데 한 줌의 사람들에게서는 사치품이 넘쳐난다."(p.175)

 

루소는 인간이 원래부터 불평등하고 계급적으로 나뉘어 있던 것이 아니라, 문명화와 사유재산의 도입으로 인해 인위적인 불평등이 생겼다고 보았다. 또한 그는 인류가 자연 상태에서는 자유롭고 평등했지만, 사유재산이 생기면서 경쟁, 탐욕, 불평등, 억압이 시작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대안으로 그는 사회계약론에서 인간의 본래적 도덕성과 연결되어 있는 자연법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새로운 정치 질서로써 모든 시민이 자유롭고 평등하게 정치에 참여하는 공화정적 사회를 '자연법'에 부합하는 새로운 질서로 제시했다.

 

3. 18C 인간 불평등 기원론21C 한국 사회

장 자크 루소가 인간 불평등 기원론을 집필한 지 270년이 흘렀지만, 인간 사회에서 불평등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국가는 법과 제도를 통해 불평등을 잠재워보려 시도하기도 했지만 오히려 불평등은 제도와 기술, 자본주의의 발전 속에서 더욱 정교하고 교묘한 형태로 변모한 채 우리 사회 곳곳에 공기처럼 퍼졌다. 그리고 나는 이 불평등이 오늘날 세대 간, 가족 간 갈등으로 재현되는 현실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한 증권사에서 작년 3'손주사랑 신탁' CF를 공개했다. 할아버지가 손주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어떤 상황에서도 "잘한다, 잘한다"를 외친다. 할아버지는 본인을 '손주 바보'라고 한다. 할아버지가 아이의 손을 잡는 모습과 함께 '손주 사랑, 신탁이 되다'라는 카피와 내래이션이 깔리며 광고는 마무리된다. 광고 평론가들은 노령화가 지속되는 현 시대상을 잘 반영했다며, 그간 나이 들어감에 따라 본인의 노후대비, 자녀들 케어까지만 소구하는 광고가 다수였지만, 이제는 '손주'에 대한 케어로 한 발 더 나아간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했다. 또한 가족의 사랑을 담은 따뜻한 광고로 실버층들에게 충분히 공감을 이끌어 낼 광고라고 생각한다며 호평했다. 그러나 나는 이 광고를 보고 무척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겉보기에는 따뜻하고 감동적인 가족애를 묘사한 광고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사랑마저 자산으로 환산하는 현실이 담겨 있다. 우리는 지금 모든 것이 으로 가치가 정해지는 사회를 살고 있다. 심지어 가족의 관계까지도 말이다. 지인들을 만나면 빠지지 않고 나누게 되는 주제가 바로 가족인데, 사랑과 신뢰로 맺어진 가족 구성원들 사이에서 ''이 갈등의 중심에 놓이게 되는 비극적 상황을 자주 마주한다.

한 지인은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 준비를 하는 자녀를 보며 푸념한다. 요즘은 대학을 나와도 바로 취업이 되지 않다 보니, 자녀가 미취업 상태로 있는 기간이 과거보다 길어졌고, 그에 대한 부모의 부담이 늘고 있는 것이다. 부모는 자녀가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 때는 지금 애들처럼 놀지도 못하고 일만 했어"라고 말하지만, 자녀는 "지금이 그때보다 더 경쟁이 심하고, 미래가 불확실하다"고 반박한다. 아르바이트로 돈을 조금 모으고 나서 훌쩍 해외 여행을 떠나는 아들을 보며 부모는 요즘 애들은 참 팔자가 좋다고 혀를 끌끌 찬다. 가족 안에서조차 서로의 경험과 현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공감의 기반이 무너지는 것이다.

요양원 사회복지사로 일하다 보니, 부모의 부양 문제를 두고 가족들 간 갈등이 발생하는 상황 역시 자주 목격한다. 90대가 된 노모에게 한 아들은 '저도 이제 노인'이라며, '이제 편히 가실 때도 되지 않았냐'고 적나라하게 말한다. 보호자가 면회를 마치고 간 후 어르신은 한참을 우셨다.

최근 기성 세대에게 유리하게 설계되어 있는 국민연금을 둘러싸고 세대 갈등은 심화되고 있으며, 각 세대는 각자가 처한 불평등한 상황을 줄곧 일방적으로 이야기하며, 사회의 혼란과 갈등은 증폭되고 있다. 나 역시 가족들과 불평등한 사회 현실에 대해 대화해보려 노력하지만 서로를 이해하기 어렵다.

다시, 루소에게 답을 구해본다. 루소는 사회계약론에서 일반 의지를 강조했는데, 이는 전체 시민의 공동선을 추구하는 의지를 뜻한다. , 각 개인의 사적인 이익이나 욕망이 아니라, 공공의 이익, 공동체 전체의 복리를 위한 의지가 있다면 이 불평등은 어느 정도 해소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날로 단단히 뿌리내리고 있는 자본주의 경쟁 사회에서 이 일반 의지를 어떻게 시민들에게 이해시키고, 공감을 얻을 수 있을까?

 

마지막으로 함께 토론하고 싶은 주제를 몇 가지 제시하며 발제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 자연적인가, 인위적인가?

2. 자본주의는 인간의 자유를 확장하는가, 제한하는가?

3. 자본주의는 공동체 정신을 파괴하는가?

4. 현대의 불평등은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