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중물 세미나

자기목소리로 공동체에 참여하여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이 만든 시민단체입니다.

Water for change

발제문 제출

  
2025.05.13 11:15

[28학기 5회차] 발제문

조회 수 72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게시글 수정 내역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게시글 수정 내역 댓글로 가기 인쇄

<마중물세미나 28학기 5강 발제문>

 

25.5.11 / 김은숙

1. 행복을 위해서 돈이 꼭 필요할까?

내가 20대 초반이었던 어느 날, 엄마가 물었다.

은숙아, 행복을 위해서 돈이 꼭 필요할까?”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이렇게 대답했다.

행복을 위해서 돈이 절대조건은 아닌 것 같은데, 필수조건은 맞는 것 같아.”

 

스쳐 지나가듯 나눴던 그날의 대화가, 20년이 지난 지금 다시 떠오른다. 그때 나는 사회초년생이었다. 가진 것이라곤 대학 학자금 대출과 건강한 몸뿐이었다. 그 시절의 나는 돈을 밝히는 것을 마치 물질만능주의에 빠진 속물처럼 여겼다. 드라마나 영화 속 부정적인 인물들이 늘 그랬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왜 나는 그날, ’돈은 필수조건이라고 말했을까?

돈이 없어도 행복할 수 있어라고 말할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우리집에는 관식이와 애순이 살고 있다. 그들의 삶을 지켜보며 자란 금명이는 돈이란 것이 행복의 기본값이라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품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두 번째 직장은 학습지 회사였다. 나는 그곳에서 지점장으로 하루 12시간 넘게 일했다. 퇴사 후, 그 시절을 돌아보면 묻게 된다. “무엇 때문에 나는 나 자신을 그렇게 혹독하게 몰아붙였을까?” 잠시 멈춰 자신을 성찰할 여유도 없이, 마치 채찍을 맞듯 일에만 매달렸다. 그 시간들을 견뎌 내었던 이유는 성공에 대한 열망 때문이었을까?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여유를 포기하지 못한 욕심이었을까? 사실은 그것도 아니었다. 백수가 된 나는 돈을 벌지 않는 자신을 무가치하게 느꼈다. 그리고 두려웠다. 매달 월급이 들어오지 않는 삶, 그로인해 생겨날 수많은 문제들이 감당하기 어려웠다. 그 두려움은 매일 나를 몰아세웠고, 자비란 없었다.

 

오늘도 누군가는 쉬고 싶다. 자신을 돌아보고 보살필 수 있는, 그런 휴식의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 일하지 않으면 당장 삶이 흔들릴 내일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날의 두려움이, 오늘 이웃의 얼굴에서도 보일 때가 있다. 바쁘고 힘겨운 대한민국의 관식이와 애순이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월급이 오르면 괜찮을까? 장사가 잘 되면 해결될까? 그렇게 돈을 벌어 서민이 된 관식이와 애순이의 삶이 가장 이상적인 것일까?

 

2. 맨땅에 헤딩

슈퍼에서 간식을 샀다. 돈은 나에게 선택의 자유를 준다. 산업화 이후 대다수 사람들은 자신의 근로 능력과 근로 시간에 비례해 돈을 얻는다. 돈을 많이 벌수록, 그만큼 자유가 보상된다. 하지만 문득, 매달 들어오는 월급 이상의 어떤 가치를 생각하게 된다. 내가 하는 일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그리고 그 일이 얼마나 의미있는지를 말이다.

 

영화[암수살인]의 실제 배경이 되었던 사건의 중심에는 김정수 형사가 있다. 그는 [그것이 알고 싶다.][꼬꼬무(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에서도 조명되었다. 김형사는 살인자의 거짓과 진실이 섞인 진술을 듣고도, 8년 동안 수사를 이어간다. 범죄자의 거짓말에 놀아나는 게 아니냐는 비난도 받았다. 하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인터뷰에서 누군가 이렇게 물었다.

그 진술이 모두 거짓이고, 살인 사건이 실제로 일어나지 않았던 거면요?”

김정수 형사의 대답은 단순하지만 깊었다.

그렇다면 다행이지요. 살인보다 제가 속은 게 나은 거죠.”

그의 월금은 다른 형사들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 수사가 승진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그는 멈추지 않았다. 그 마음은 경찰로서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라는 직업 윤리의식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소방관, 의사, 교사, 기자, 정치인, 사회복지사...

우리의 안전과 복지를 위해 일하는 이들을 생각하며, 나는 나의 직업윤리를 돌아본다. 그분들에게 감사한 만큼, 나는 뜨끔해진다. 대기업 앞에 줄 서있는 청년들이나 무사안일한 태도로 일하는 직장인들의 마음이 사실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음을 느낀다.

멘땅에 헤딩하듯 가치없다고 여겨지는 일은 가장 필요할 일일지도 모른다. 가치의 의미가 다른 누군가에 의해 이 사회가 지켜지고 있다.

 

3. 루소: 두 얼굴의 돈

마침내 인간은 탐욕스러운 야심이나 진정한 필요성 때문이 아니라 재산을 늘려 남보다 우위에 서려는 열망 때문에 서로를 해치려고 하는 옳지 못한 경향을 불러일으키고, 더욱 확실한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 친절의 가면을 쓰기 일쑤이기에 더욱 위험하다고 할 수 있는 은밀한 질투심을 불러일으킨다.

부를 나타내는 표시[화폐]가 발명되기 전에는 부를 주는 토지와 가축만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것이 사람들이 소유할 수 있는 유일한 실질적 재산이었다. 그런데 상속 재산의 수나 범위가 늘어나 땅 전체를 덮고 서로 경계를 접하게 되자, 타인을 희생시키지 않고서는 자기 재산을 늘릴 수 없게 된 사람들이 생겨났다. 123p

 

이렇게 해서 부유한 자의 횡령과 가난한 자의 약탈과 모든 이들의 방종한 정념이 자연적인 연민이나 아직은 약한 정의의 목소리를 잠재우면서 인간들을 인색하고 야비하고 악독하게 만들었다. 124p

 

사실, 무지하고 속아넘어가기 쉬운 사람들을 끌어들이는데는 이런 설명조차 필요 없었다. 더구나 그들 사이에는 피차 해결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아서 중재자가 꼭 필요했고, 욕심과 야심이 지나쳐 통솔자 없이는 생활을 유지해나갈 수 없는 실정이었다. 127p

 

불평등은 자연상태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으므로 인간 능력의 발달과 정신의 진보에 따라 성장하고 강화되며 소유권과 법률의 제정에 따라 안정되고 합법화된다고 결론 내릴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실정법에 따라서만 인정되는 도덕적 불평등은 그것이 신체적 불평등과 균형을 이루지 못할 경우에는 언제나 자연법에 위배된다는 결론도 나오게 된다. 154p

 

등장은 신분의 장벽을 허무는 평등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돈은 인간의 욕망을 담기 시작했다. 소유한 자와 소유하지 못한 자의 차이는 점점 더 명확해졌다. 돈은 곧 권력이 되었으며, 평등과 불평등을 통해 사회를 통제하였다. 노동자로서 나는 관식이 되었다. 직업윤리보다, 생존을 위한 비겁함을 택하게 되었다. 한때 돈을 벌면서 느꼈던 자유는 20년 후에도 지속되지 않았다. 왜 그 자유는 오래가지 못했을까? 돈애 얽매이지 않고, 내 소신대로 일의 가치를 실천할 수 있는 자유는 어디서 오는가? 우리는 이제 자연상태로 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와버렸다. 그렇다면 지금, 나는 이 사회를 어떻게 해석하고, 마주해야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