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중물 세미나

자기목소리로 공동체에 참여하여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이 만든 시민단체입니다.

Water for change

발제문 제출

  
조회 수 42 추천 수 0 댓글 0
Atachment
첨부 '1'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게시글 수정 내역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게시글 수정 내역 댓글로 가기 인쇄

마중물세미나 28학기 7강 발제문

 

유대인 문제에 관하여 : 카를 마르크스

25. 6. 8 / 뗏목지기 민두홍

 

마르크스주의는 애덤 스미스로 대표되는 영국의 정치경제학, 프랑스의 사회주의 운동, 독일의 고전 철학 등 당대 부르주아 사회 이론의 가장 선진적 경향들을 종합하면서 탄생했다.

유대인 문제에 관하여는 그 과정의 초기작으로서 마르크스가 청년 헤겔 좌파에서 공산주의 사상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쓰게 된 글이다.

마르크스는 청년 헤겔 좌파에서부터 정치 활동을 시작했다. 부르주아 자유주의자들과 연대했고, 그들이 후원하는 라인 신문에서 저널리스트로서의 경력을 쌓기 시작하였으니 일종의 자유민주주의 좌파라고 할 수 있다. 당대 프러시아(프로이센) 국가는 봉건 왕정과 융커들과의 연합체였고, 민주주의 형태를 띤 국가가 아니었다.

프러시아 국가가 잠시 개혁적 모습을 보이자 독일의 부르주아 자유주의자들은 하나둘씩 급진성을 버리고 정치적으로 후퇴하기 시작한다. 특히, 라인 신문 폐간과 관련된 언론의 자유(표현의 자유) 문제에서 부르주아 자유주의자들은 일관성을 보이지 않았다.

청년 헤겔 좌파들은 분화했고, 다수는 관념적으로 후퇴하기 시작했다. 사상이 사회를 변혁하는 열쇠라는 것이다. 이는 사회 변혁이 인간 생활방식의 근본 변화에서 시작돼야 한다고 말한 헤겔의 주장에서 오히려 후퇴하는 것이었다. 헤겔에게 자유의 확대는 새로운 생활방식을 지향하는 실천 형태가 미리 등장해 있을 때 가능한 것이었다.

따라서 새로이 등장하는 프롤레타리아를 발견하는 과도기 과정이었다. 가령 이 시기 마르크스는 해방의 머리는 철학이며, 심장은 프롤레타리아트라는 표현을 쓰는데, 여전히 프롤레타리아트는 대상화되어 있다. 이후 엥겔스와의 만남과 망명 초기 프랑스 사회주의 운동과의 만남과 탐구 등을 거치면서 마르크스는 노동계급의 자력 해방사상으로 발전해 간다.

유대인 문제에 관하여도 바로 그 과정에서 옛 동료(선배 격)였던 바우어에 대한 비판적 논쟁의 형식을 띠고 있다. 일각에선 반유대주의를 드러낸 책이라고 하지만 근거 없는 비방이다. 이 논문은 유대인 해방을 지지하는 목적으로 쓰게 된 글이다.

바우어는 유대인 억압의 문제를 유대인들이 가지는 유대교의 문제에서 찾았다. (유대인은 혈통 개념이 아님. 유대교 신도임을 정체성으로 하며, 반유대주의는 이 유대교도들에 대한 인종차별을 뜻한다.)

그리하여 종교 일반이 문제라는 식으로 나아간다. , 종교로부터의 해방이 종교를 폐지하는 것인 것처럼 유대인의 해방은 유대교를 포기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이다.

1.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마르크스는 종교 역시 사회적 현상으로서 종교가 발 딛고 있는 사회적 관계에서 그 뿌리를 찾아야 하고 문제를 해결하려 해야 하는 것이라고 하였으며 마르크스의 종교관은 소외론과 더불어 진전해 나간다고 보았다.

따라서 마르크스는 유대인 차별의 원인으로, 유대인의 민족적 특성을 들여다보기보다 끊임없이 차별받는 존재로서 유대인들을 만들어내는 사회경제적 구조와 조건을 살피는 데 집중한다.

그리하여 종교 일반의 문제, 종교를 버리기가 아니라 종교가 발생하고 사람들이 종교를 믿는 조건들을 탐색하고 그 조건들을 변혁시키는 것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종교의 폐지가 아니라 종교의 자유가 마르크스주의의 구호가 되는 것이다.

2. 마르크스는 이 시기에 국가에 대한 사상을 발전시키고 있었는데, 유대인 문제에 관하여도 그 점을 파고든다. 마르크스는 종교 폐지가 아니라 세속의 국가 비판으로 나아간다. 그래서 바우어가 유대교의 저발전성을 문제 삼는 것에 대해 유럽의 기독교 국가도 똑같다고 비판하며, 국가 자체가 문제라고 나아가는 것이다.

여기서 권리의 문제가 나타나는데, ‘자유라는 것이 획득하려는 어떤 상태를 가리킨다면, ‘권리특정한 자유를 국가에 의해 법으로 보호받는 것을 가리킨다. 그래서 권리는 사회적인 것의 확장 그 자체가 아니라 국가에 대한 요구가 되는 것이다.

3. 마르크스는 또한 국가와 시민사회 사이의 구분에 대한 문제를 다룬다. 시민사회는 국가 또는 정치 사회에 구분되는 사적 영역으로 부르주아의 권리가 지배하는 영역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현대적 개념의 시민사회와는 다른 의미로 표현한 것이 아닐까 생각함) 사적 소유 같은, 국가가 사회로부터 소외된 형태를 취하는 것은 국가와 시민사회를 분리하기 때문인데, 이것이 바로 자본주의 고유의 특징인 정치와 경제의 분리다. 여기서 핵심은 국가가 사적 소유권 등을 침해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국가와 시민사회의 분열 자체를 문제 삼는 것이다.

이 때문에 마르크스는 정치적 해방(국가로부터의 간섭 배제)만으로는 부족하고 인간 해방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시민사회(사적 영역이라는 명목으로 보호받는 부르주아적 사회관계)가 변혁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상에서 보듯 마르크스는 아직 현실 문제 해결의 주체로서의 프롤레타리아트를 발견하지는 못했다.

 

허접한 발제에 대해서 또는 발제와 상관없이 다음과 같은 내용도 포함하여 토론해 볼 것을 제안합니다.

토론 거리 주문

  • 금융과 상업을 중심으로 경제적 성장을 독점한 역사적 배경과 사회적 배경 등에 대하여 의견을 나누어 보세요.
  • 발달과정에서의 유대인의 역할과 나찌독일에 의한 유대인 대학살의 원인에 대하여 의견을 나누어 보세요.
  • 발생과 현재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사실은 이스라엘에 의한 학살로 규정짓는 것이 적확한 표현)의 원인(과거의 원인과 현재의 원인)과 책임에 대하여 의견을 나누어 보세요.
  • 건국과 관련하여 영국과 미국, UN은 어떤 야비한 역할을 하였는지 3번의 주문과 연동하여 의견을 나누어 보세요.

 

!

설마 세미나에 참석하지 못하는 나에게! 그것도 병원에서 모진 병마와 씨름하는 나에게! 진짜로 발제를 요구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습니다. ^^

병원에서 수감생활 중에 있는 상태라서 6월 세미나 발제에서 해방되었다고 긴장을 늦추기가 무섭게! (사실은 생각도 못 하고 있었습니다만) 이현주 국장님의 은근하면서도 강하게 받아들여지는 압박에 못 이겨 내 처지와 조건상 책을 읽고 발제한 것이 아니라, 오래전에 들었던 귀동냥과 슬쩍 훑은 기억을 소환하여 주저리주저리 끄적거린 졸고(拙稿)라 내용의 허약함을 고백합니다.

그러므로 발제에서 기술한 내용들이 잘못 해석되었거나 핵심을 비켜 언저리에만 머무는 우()를 범한 부분도 있을 것이 분명한데, 비겁한 변명을 대자면 내가 하겠다고 했던 발제는 공산당 선언이었는데 국장님이 유대인 문제에 관하여를 하라고 해서 몹시 더 당황했더랬습니다.

물론 공산당 선언도 졸필에 지나지 않았겠지만요.

급기야 손전화기라는 문명의 이기를 이용하여 나름 마르크스주의 전문가라는 친한 벗의 조력도 구해 보았습니다만...

위안이 되는 점은 학식의 깊이나 넓이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인지훈 선생님이 허접한 발제에 대한 충분한 설명으로 마무리해 주실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기에 부담 없이 노트북을 덮을 수 있겠습니다.

또한 세미나에 참석하는 벗들의 연령대를 감안하여 12포인트로 작성한 저의 세심한 배려에 대해 칭찬도 아끼지 말아 주시기를 바랍니다. ㅎㅎ

끝으로 다시는 발제하겠다는 치기 어린 약속을 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하며 그저 맑은 벗들을 만남으로써 행복을 수확하는데 만족하는 내가 될 것을 다짐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개그를 다큐로 받지는 않으시겠죠?^^)

그나마 참석하지 못함으로 인해 벗들의 날카로운 질문을 피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다행입니까! 푸하하하~~~~~